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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한국 축구 - 한국형 '뉴 파워사커'

권영구 2010. 6. 15. 11:41

[SOUTH AFRICA 2010]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체력·패스… 한국형 '뉴 파워사커'

  • 입력 : 2010.06.14 03:01

달라진 한국 축구
2002월드컵 DNA… '힘과 키'의 유럽팀을 미드필드부터 압박, 상대공격 미리 차단
기술도 업그레이드… 패스 성공률 73%, 역습 전환도 빨라져

한국은 12일 월드컵 B조 첫 경기 그리스전의 2대0 승리를 통해 세계 팬들에게 한국 축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90분간 끊임없는 압박으로 상대의 전술 공간을 빼앗고, 전후반을 변함없이 뛰는 체력을 과시했다. 박지성을 비롯한 선수들은 공격과 수비 포지션을 계속 바꾸며 상대팀을 혼란에 빠뜨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보여줬던 '파워사커(power soccer)'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뉴(new) 파워사커'를 보여준 것이다.

FIFA(국제축구연맹) 분석에 의하면 한국선수들이 1차전에서 뛴 총 거리는 그리스보다 3.1㎞나 길었다. 체력적으로 유럽팀인 그리스를 오히려 앞섰다는 의미다. 10㎞ 이상을 뛴 선수 수도 한국이 5명이었고, 그리스는 3명뿐이었다. 이용수 세종대교수(KBS해설위원)는 "축구는 육상 100m와 달리 쉬었다가 다시 달리는 것을 반복한다"며 "축구에 맞는 체력을 과학적으로 키우는 프로그램이 히딩크 감독 때 도입돼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이정수가 그리스전 전반 7분 그리스 진영 왼쪽 코너 부근에서 기성용이 올린 오른발 프리킥을 골로 연결하는 장면을 연속동작으로 분석한 사진. 최종 수비인 이정수는 그리스 수비진을 뚫고 기습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화면=SBS, 영상분석=다트피쉬
한국은 그리스보다 더 정교했다. 명지대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신문선 교수팀의 분석 결과, 한국의 패스 성공률은 73%로 그리스(71%)보다 높았다. 수비 지역의 패스 성공률도 71%로 상대보다 좋았다. 이전의 한국축구는 상대가 압박하면 일단 앞으로 질러놓고 보는 '뻥 축구'를 했지만, 지금은 정확한 패스를 통해 오히려 역습에 나선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압박에 시달린 쪽은 한국이 아니라 그리스였다. 그리스가 공을 잡으면 한국선수 2~3명이 순식간에 둘러싸 공을 줄 곳을 차단했다. 이 때문에 힘과 키에서 뒤지면서도 시종 그리스를 끌고 다닐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 포트엘리자베스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전반 첫 골을 넣은 이정수(오른쪽)와 태극 전사들이 필드를 달리고 있다. /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많은 전문가는 지금의 한국 축구에 '2002 월드컵 DNA'가 녹아 있다고 말한다. 현재 대표팀 23명 중에는 2002년의 성공을 보며 중·고교시절을 보낸 25세 이하 '월드컵 세대'가 7명이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볼튼) 박주영(AS모나코) 기성용(셀틱) 김남일(톰 톰스크) 등 '유럽파'를 포함해 해외에서 활약 중인 선수가 10명이나 된다. 이들은 세계적 선수들과 늘 겨루고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외국팀에 대한 공포심이 없다. 2002년 대표팀 때 유럽 메이저 무대 선수가 안정환(당시 이탈리아 페루자) 한 명뿐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멤버였던 조광래 경남FC감독은 "이전 우리 세대는 월드컵에서 두려움 때문에 뒤로 물러서 수비만 했다"며 "지금 선수들은 완전히 다르다. 세계적 강호들과 만나도 자신감이 넘친다"고 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은 한국 축구가 더는 동네북이 아니며, 세계 수준에 바짝 다가선 팀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기회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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