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꽉 닫힌 마음이 기업 망친다, 그리고 당신까지 [중앙일보] 2009.09.26 01:32 입력 / 2009.09.26 01:34 수정
실패에서 배우는 성공의 법칙
시드니 핑켈스타인 지음, 하정필 옮김
황금가지, 432쪽 1만5000원
제목은 유혹적이지 않다. 빤한 경영서·처세서로 보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같은, 말은 옳지만 내용은 진부한 책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 콘텐트가 쫀득쫀득하다. 인용 사례가 구체적이고, 다양한 인터뷰 또한 현장감 있다. 무지와 오만, 독선과 편견으로 무너져간 기업들의 실패담이 착착 와 닿는다.
주요 해부대상은 대기업이다. 미국 다트머스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있는 저자가 MBA과정 학생들과 함께 대기업의 실패사례를 6년 동안 수집·분석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듯 솟구치던 기업들이 어느 날 갑자기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했던 원인과 배경을 찬찬히 뜯어본다. 모토로라·소니·GM·삼성 등 굵직굵직한 회사는 물론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프로구단도 도마에 오른다. 순간의 아집과 오판이 치명적 상처로 되돌아오는 과정이 생생하다. 책의 주요 타깃인 기업경영자를 넘어 하루하루 버텨가는 일반인도 자신의 주변을 점검하는 나침반으로 삼을 만하다.
66개의 위성을 이용해 전세계 통화를 실현하려던 이리듐 위성전화 서비스 개념도. 1998년 2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들여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1년 만에 15억 달러의 부도를 내며 파산보호 조치를 신청했다. 이용료가 훨씬 싼 지상파 휴대전화의 확산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중앙포토] | |
예컨대 미국 프로야구 명문구단인 보스턴 레드삭스. 1959년 7월 레드삭스는 메이저리그 팀 중 마지막으로 인종차별을 폐지했다. 다른 구단이 실력파 흑인 선수를 영입해 승수를 쌓아가고 있을 때 ‘백인 순혈주의’에 사로잡혔던 레드삭스의 성적은 신통하지 못했다. 47년(브루클린 다저스가 메이저 구단 최초로 흑인선수를 영입한 해)부터 52년까지 메이저리그 팀 성적과 흑인선수 기용의 연관관계를 조사했더니 16개 중 13개 팀이 흑인선수 수혈로 성적이 나아졌으며, 등록된 흑인 선수가 많은 팀일수록 대체로 승률이 높았다. 반면 40년대 후반 평균 94.6승을 올렸던 레드삭스의 승수는 조사기간 동안 평균 80승으로 떨어졌다. 저자는 “레드삭스의 인종차별은 비이성적 행동의 극단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89년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소니는 또 어떤가. 무려 60억 달러의 인수비용을 쏟아 부은 소니는 5년 만에 32억 달러의 회수 불능 손실을 공표하는 처지까지 무너졌다. 이유는 방만한 경영과 과도한 경비.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보다 훨씬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고, 경영자들의 주머니를 후하게 채워주었음에도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 대한 준비 부족으로 거액만 낭비한 꼴이 되고 말았다.
책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줄을 잇는다. 디지털 혁명을 우습게 보며 아날로그 휴대전화를 고집했던 모토로라의 자만, 실적지상주의·분식회계로 무너졌던 엔론의 부도덕성 등등, 기업실패학의 교과서라 부를 만하다. 그 한복판을 뚫는 키워드는 ‘열린 마음’의 부재다. 조직 내 소통의 동맥경화다. 비판과 반성이 결여된 일방통행식 의사구조다. 저자는 이를 ‘좀비기업’으로 명명했다. “좀비처럼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배회하는 시체와 같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지금 당신의 기업은 얼마나 건강한가. 그리고 당신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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