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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권영구 2024. 2. 13. 11:39

 

 

 

 

 

 

이름을 새기는 일은 한자리를 견디는 것,

비 오는 줄도 모르고 도장을 팠다 벼락 치는 소리와
대추나무 쪼개지는 소리와 내 가슴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양각하는 이름 석 자, 손때 묻은 조각도가 젖고
이름이 되지 못한 나무 티끌들이 낡은 책상에 빗방울처럼
흩뿌려졌다 이름 앞에 구부정히 앉아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목도장뿐이었다 인주를 묻혀 찍어보는,

붉은 입맞춤

견딜수록 한자리가 아팠다

- 박은영, 시 '도장'


늘 나로 존재하는 이름과 그 이름을 새겨준 한자리의 노고.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라
여전히 나라는 한자리를 지키며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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