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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논란' 조영남의 그림이 달라진 이유

권영구 2016. 5. 20. 09:24


'대작 논란' 조영남의 그림이 달라진 이유


입력 : 2016.05.19 17:03 | 수정 : 2016.05.19 21:02

대작 작가는 군산대 나온 송씨
평소 송씨 "백남준과 조영남 내가 소개해줬다"
직설적이었던 조영남의 그림이 변한 이유?


‘조영남 대작(代作)’ 사건의 반응은 두 가지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은 ‘속임수다, 사기다’ 라고 반응하는 반면, 그림 좀 안다는 진중권 같은 이들은 ‘포스트모던 어쩌구’ 를 이유로 이건 ‘미술계 관행’이라고 말한다.

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일단 조영남 그림부터 얘기해보자.
1990년대, 가수 조영남씨는 화가 겸업을 선언했다. ‘가수가 웬 그림이냐’는 얘기가 많았다. 그림을 특별한 사람만 그리는 것은 아님에도 화단의 텃세가 만만치 않았다. 화단의 기류와는 별개로, 기자도 그의 그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투’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그의 발랄함에는 한 표를 주고 싶었지만, 그를 구현하는 방식이 너무 직설적이었다. 그림은 맞선 자리에서 만난 이성과 비슷하다.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좋은 사람이 있듯 첫 눈에도 좋은 그림이 있다. 조영남의 그림은 기자에게는 ‘첫 눈에 싫은 사람’이었다.
몇 년 전, 기자는 조영남씨의 그림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고 반성했다. 그는 화투나 카드 같은 소재를 그야말로 ‘소재’에 머무르게 하면서 더욱 확장적 자세로 화면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이 송기창이라는 무명화가의 ‘대작(代作)’이었던 것일까?
1999년 조영남의 그림


2011년 조영남의 그림


2013년 조영남의 그림



송기창씨는 올해 59세로, 군산대 미대를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는 19일 “전주 영생고 시절 미술장학생이었고, 현재 화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육근병, 박방영 작가와 고교 동문”이라고 보도했다. 송씨와 교류한 미술계 지인들은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를 “예술가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된다. 한마디로 좀 기이한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송씨는 대학을 마친 뒤 여러 작가 밑에서 조수 생활을 하다 서른이 훌쩍 넘어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동두천에서 동거하던 여성을 따라 미국에 가서 20년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도 들려오지만 송씨를 통해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송씨는 현재 전화기를 끄고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

송씨는 나름 그림 솜씨가 뛰어나 미국에 있을 때 뉴욕 근처에 살며 비디오아티스트인 백남준(1932~2006) 작가의 조수 역할도 했다고 한다. 송씨 지인은 “송씨가 미국에 살면서 조영남씨를 알게 됐는데, 조영남씨가 부탁해 백남준씨와 안면을 트게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조영남이 미국에서의 인연을 고맙게 생각해 송씨를 살갑게 대하고 송씨가 귀국한 뒤에는 서울에 거처를 제공해 준 것으로 안다”고도 했다. 그러나 조영남씨는 2011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 어느 날 서울 종로 영풍문고 앞에서 백남준을 처음 만났고 ‘첫 인상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같은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송씨의 ‘자기현시적’ 발언이었는지, 조영남씨의 기억이 잘못 됐는지 확인이 필요한 대목.

그렇다면 송씨는 왜 자기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남의 그림을 숨어서 그려줬을까. 그의 지인은 “송씨는 자기 그림을 팔 줄 모르는 사람이다. 사회성도 부족하고. 조영남씨가 처음에는 과거 뉴욕 인연으로 그림을 맡겼고, 그러다 잘 그리니까 계속 맡기게 된 것으로 안다”며 “두 사람 인연이 오래 되어 그간 정도 쌓였고, 미움도 쌓였을 것”이라면서 “몇 년 사이 조씨가 송씨를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 하는 바람에 둘 사이가 틀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쯤되면 조영남씨와 송기창씨 관계는 드러내놓고 밝히는 ‘스승과 제자’ ‘도제’ 관계 보다는 조씨의 ‘숨겨진 남자’ 쪽에 가깝다. 미술 좀 안다는 이들이 주장하는 앤디 워홀 식 ‘팩토리’ 생산 구조와는 멀어도 한 참 먼 얘기다. “김기창도, 김창열, 박서보도 다 제자들이 도와준다”는 일부의 주장도 조영남씨 경우와는 다르다. 화가 개개의 경우가 다 다르긴 하지만, 조수나 제자가 그림을 도와주는 경우에도 모든 과정을 스승이 검수하고, 제자는 기계적인 부분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영남의 사인이 새겨진 그림에 조영남의 붓질이 몇 회나 가해졌고 송기창은 며칠을 이 그림에 투자했는가 보다 더 먼저 물을 것이 있다. 송기창씨가 그림을 대신 그려줬다고 주장하는 시점 이후 조영남씨의 그림에 추상화적 면모가 더 강해진 것은 누구의 손길 덕이었는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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