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독서MBA 뉴스레터 126] 인간답게 산다는 것 ...다산은 향촌에 남아있는 고질적인 악습을 보며 개탄했다

권영구 2019. 11. 28. 10:54


- 가진 자들이 더 겸손해야 하는 이유 -


지방 어느 마을에서 대구로 옮겨와 임시로 타향살이를 하고 있던 성태욱은 형과 동생, 아들 성성일과 함께 살았다. 그는 양반인데다 재산이 많다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이사 온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해서 동네 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있었다. 양반가 출신에 재산까지 많으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성태욱 일가는 마을 사람들과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데면데면 살았던 모양이다. 이에 한동네 사람 성치문, 박홍술, 김세정이 모여 앉아서 술을 나눠 마시던 중에 성태욱 일가를 마을에서 내쫓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들은 성태욱의 집안에서 노비로 지내는 맹춘 어멈을 구워삶기로 했다. “성태욱이 동네 아낙네들과 방탕하게 놀아나고 있다

원래 이런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에 퍼지기 마련이다. 불과 며칠 만에 성태욱이 마을의 반반한 여자들을 전부 다 건드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졌다. 뜻밖의 소문에 화가 난 성태욱은 아들 성성일을 비롯해서 형, 동생과 함께 소문의 근원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금방 자기 집안에 있는 맹춘 어멈을 붙잡았다. 그들은 맹춘 어멈을 화가 풀릴 때까지 때렸다. 맹춘 어멈은 성치문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변명했지만 결국 맹춘 어멈은 열흘 뒤에 맞아 죽고 말았다.

정조는 이 사건에서 폭행에 가담한 네 사람 중 한 명만을 특정하여 사형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게다가 네 사람이 저마다 발뺌을 하는 바람에 증언조차 뚜렷하게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조는 이러한 정황을 감안하여 사건의 한복판에 있는 성태욱은 유배형에 처하고, 아들과 형제들은 때린 후에 석방할 것을 명했다.

다산은 말하기를 향촌의 부유한 백성은 대개 인심을 잃고 살아가게 마련인데 한 번 그렇게 되면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음란한 행실을 했다는 등의 무고를 하여 반드시 그 집안을 풍비박산 내려 하고, 그를 말살한 다음에는 재산을 흩어지게 해서 그로 인해 생기는 파생 이익을 챙기려고 합니다. 이것은 향촌에 으레 남아 있는 추악한 습속이자 고질적인 악습입니다. 지금 임금께서 만 리 밖을 밝게 보시어 성태욱의 원통함을 씻어주셨습니다. 또한 아들 성성일은 아버지가 추잡한 관계를 가졌다는 허위 사실로 고초를 겪고 있으므로, 자식으로서 이를 바로잡고자 허위 고발자를 처단했습니다. 그 아들에게 어찌 죄가 있겠습니까?”

다산은 사건의 진상과 임금이 내린 실제 형벌과는 별도로 향촌의 양반과 부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자들은 쉽게 사람들의 원성을 사게 되고, 그런 원성들이 모여 모함하고 저주하는 말로 발전한다는 설명이다. 다산은 이것이 향촌에 남아있는 고질적인 악습이라며 개탄한다. 이런 일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재벌이나 고급 관리들에게도 종종 일어난다. 자신을 낮추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다가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되어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과거나 현재나 많이 가진 자들이 이웃 사람들에게 원성을 살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