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독서MBA 뉴스레터 121]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권영구 2019. 11. 14. 09:50


'여행자의 독서'에 보면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라고 적혀있다. 독서가 없는 경험은 산만하여 흩어지기 쉽고, 경험이 따르지 않는 독서는 핏기 없이 창백한 것이기 쉽다. 골방에 파묻힌 독서보다 길에 핀 꽃을 바라보고 맨발로 모래를 밟아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헤르만 헤세나 앙드레 지드, 파울로 코엘료 같은 영적인 작가들은 여러 글에서 강변해 왔다. 물론 여행 없이도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사람들도 많다.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에 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 준 '국화와 칼' 같은 책을 쓴 것이나, 한 번도 그 지역을 여행해 보지 않은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중국과 서역을 잇는 길을 '실크로드'라 칭한 것을 보면 진리를 얻고 그걸 의미의 그물로 엮어내는 데 여행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중요성, 필드워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학식이 높은 학자나 지혜로운 현자들도 여행의 중요함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예수의 철학과 종교를 완성한 것은 그 기록이 희미하게 전해지는 광야에서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여행이 그들을 만든 것이다. 27년이 걸린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 여행은 '동방견문록'이라는 성경 이후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결과적으로 서구 제국주의 시대를 연 계기가 되었지만), 이 책은 서양 사람들에게 자신들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더 넓고 놀라운 세상이 저 너머에 있음을 깨우쳐 주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손에 '동방견문록'이 들려 있었다는 일화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보다 400여 년 앞서 살았던 신라 승려 혜초도 부처가 거쳐 간 곳들을 순례하고 불교가 얼마나 멀리까지 건파되었는지 궁금해 한 발 한 발 내딛다가 멀리 페르시아(현재 이란)로 추측되는 땅까지 짚신과 맨몸으로 닿게 됐고, 그 경험을 '왕오천축국전'에 남겼다. 우연찮게 따라가게 된 북경 사행길에 청나라의 앞선 문물과 낯선 세상에 대한 암시를 가득 안고 온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또한 조선 후기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모든 작가와 사상가들이 여행가는 아니었지만, 가장 훌륭한 작가와 사상가들 중에 여행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험 없는 독서야말로 무수히 쌓아 놓은 책 속에서 길을 잃기 알맞은 조건이지 않을까.

어릴 적 농노에게 부친이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사형대에 묶여 죽음의 공포를 직접 겪었으며, 시베리아 유형을 경험한 간질병 환자 도스토옙스키는 이 모든 경험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위대한 문학작품들로 승화시켰다. 톨스토이 역시 젊은 날 자원입대한 군대에서 세바스토폴 전투 등을 직접 경험하였고, 절제하지 못한 자신의 방탕과 욕망에 내내 괴로워하였으며, 농부들과 함께 노동하고, 그들 삶 속에 들어감으로써 위대한 건강함으로 빛나는 저작들을 세상에 남겼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경험들은 나를 키우는 스승이 된다."던 괴테의 말은 단순한 질풍노도 시기의 전언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