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문화생활정보]불안정한 일상을 채워 주는 위안과 격려

권영구 2025. 5. 20. 10:54

우리는 앞과 뒤도 알 수 없는 곳에서 표류하며 삽니다. 가고자 하는 곳이 있어도 그곳이 최종 목적지인지 그곳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말이죠. 그저 허우적대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애쓸 뿐, 정작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인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언어’입니다.

 

 

우리가 세계와 만나 그 거대함에 짓눌릴 때,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 언어는 우리와 함께하며 세상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생각과 사고를 확장시키며, 자신 밖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죠. 이들은 말이 많지 않지만, 이들이 전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꿰뚫습니다.

 

위안은 극도로 힘들고 추한 순간에
우리 자신, 우리 세계, 우리 서로에 대해 아름다운 질문을 던지는 기술이다.
오랜 기다림이 인식 가능한 형태로 열매 맺지 못했을 때, 사랑하던 사람이 사라질 때,
희망이 그려 온 것과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질 때 우리는 위안을 찾아야 한다.

 - David Whyte 저, <위로> ‘위안’ 중에서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사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단어와 만났을 때 우리는 그 단어와 오래도록 함께 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단어는 혼자, 분노, 속박, 고통과 같이 부정적인 단어일 수도 있지만 감사, 용기, 용서, 우정과 같이 아름다운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단어인지는 상관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이 단어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간직한 채 말을 거니 말입니다.

 

 

기존에 알았던 개념을 새롭게 맛볼 때 우리는 세상과 참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진정한 삶은 바로 우리 등 뒤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힘만으로는 그 삶을 찾을 수 없지요. 등 뒤를 볼 수 있는 누군가와 만나고, 그 만남을 위해 자신을 열어 둘 때에야 우리는 참된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열어 두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본래 취약하기 때문이고, 그 취약한 곳까지 열어야 진정한 만남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만남을 하게 되고, 그 만남 속에서 기존에 알았던 개념들을 새롭게 맛볼 때 우리는 참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절망하고 있지만 그것을 주기적으로 필요한 보수 기간이자 일시적 병가 기간으로 여길 수 있게 되고, 진정한 용기란 내면을 향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 우리 자신을 우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생각보다 더 큰 존재임을 알게 되죠. 이러한 깨달음이 우리를 진정한 기쁨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충만하고 자유로운 기쁨을 느끼려면 두려움의 경계를 넘어가야 하고 불안과 걱정에 가득한 자아를 떨쳐 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혼자’라는 단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외로움을 찾을 수도 있지만 미지의 것과 친해질 수 있는 사색의 기회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일 때 우리는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가 됩니다. 혼자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잘 보게 되고, 자신 외의 다른 누군가를 바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혼자이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우리는 고독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처럼 내면의 단어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하면 세상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이제까지와 다르게 듣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고, 괜한 것에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고, 결국에는 다 괜찮아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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