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문화생활정보]손톱만큼도 없었던 삶의 자부심을 처음 느낀 순간

권영구 2025. 2. 27. 09:47

12월 19일, 대구 달서구의 72세 권분자 할머니는 그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살면서 자긍심, 자부심은 손톱만치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그 계약서를 작성하던 날만큼은 마음이 막 들떴었어요.”

 

그 날은 권분자 할머니가 기부 계약서를 작성하던 날입니다. 권 할머니는 스물일곱 살, 당시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후 아이를 임신하고 10여 년간 남편과 함께 대구의 여러 시장을 돌며 옷 장사를 했습니다.

쉬는 날 없이 매일 새벽같이 일찍 일을 나가야 했던 할머니는 좁은 단칸방을 옮겨 다니며 아이들을 키웠던 그 시절 참 힘들게 살았다며 그 때를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딸이 4학년 되던 해인 1992년 할머니 부부는 그간 옷 장사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대구의 24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할머니의 남편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중개소를 차렸습니다. 할머니는 아이 둘을 키우는 데 전념했죠.

 

그러다가 11년 전부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이 사업은 여성 어르신이 유아 교육 기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어린이들에게 우리 옛이야기와 미담 등을 들려주는 활동이었는데요. 할머니는 일주일에 세 번씩 어린이집, 유치원을 찾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하루에 받는 활동비는 3만원. 할머니는 이 돈을 한 번도 쓰지 않고 10년간 저축하여 무려 5000여 만원을 모았습니다.

 

이 밖에 생활하면서 아낀 돈을 틈틈이 저축해 1억원을 모았습니다. 돈 관리를 위해 통장도 5개 이상 가지고 다녔던 권 할머니. 할머니는 “돈은 가지고 있으면 쓰기 십상”이라며 ‘낭비란 절대 없다’는 생각으로 알뜰살뜰하게 살아왔습니다. 치약도 끝까지 쓰려고 끄트머리를 잘라 속에 남은 내용물이 없어질 때까지 3~4번은 더 쓰고 또 썼습니다.

 

 

할머니가 1억원을 기부하기 전엔 TV 광고를 보고 월 2만원씩 소액 기부를 해왔습니다. 그 후 이야기 할머니 활동 등을 통해 받은 돈을 꾸준히 저축하면서 이 돈을 나중에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할머니 활동 마지막 해인 재작년에 기부하려 했지만, 방법을 잘 알지 못해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딸의 도움으로 기부처를 찾게 되었고, 그 후에도 가족들이 큰돈을 기부한다고 말릴까 봐 한동안 알리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기부할 것이라고 처음 주변에 알렸을 때 지인들은 놀랐다고 합니다. ‘차라리 그 돈을 생활비에 보태라’거나 ‘나이 들어서 뭐 하러 기부를 하나, 그 돈으로 편하게 여행이나 다녀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할머니는 애초 돈을 벌려는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장사를 했지, 소소하게 모은 돈을 허투루 버릴 생각은 없었고 남편과 함께 번 돈이 아니라 내 힘으로 모은 돈을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할머니는 “언젠가 꼭 기부를 해봐야겠다고 꿈꿔왔는데 정말 이뤄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실제 기부를 해보니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소를 보였습니다.

 

최근 할머니는 기부에 그치지 않고 봉사 활동을 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잊고 지냈던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는 할머니. 지난해 10월엔 미혼모 시설을 방문해 아이들을 돌봤고, 올해 4월엔 중증 장애인 시설을 찾아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젊었을 적 다양하게 기부 못 해본 게 아쉽고 훗날 재산을 사후에 기부하는 ‘유산 기부’도 해보고 싶다는따뜻하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큰돈을 기부할 수 있다는 걸 주변에 알려보고 싶었어요.” -권순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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