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일상스토리...상실(喪失)에 관하여

권영구 2023. 6. 30. 10:28

 

 

일상스토리

상실(喪失)에 관하여

2023.06.30

 

 

_ 이른 아침 예고된 부고를 접했다. 존경을 담아 내심 좋아하던 분의 부고였다. 어머니와의 친분으로 시작된 그분과의 인연은 내게도 이어져 나 역시 그분의 사랑의 혜택을 받았다. 손수 농사지으신 식재료들과 약이 되어줄 건강식, 내 아이의 손에까지 용돈을 쥐어주시던 다정한 온기를 채 돌려드리지 못하고 떠나셨다 생각하니 죄송했고 이제 만날 수 없을 그분의 빈자리가 허전했다. 늘 베풀어주셨던 감사함에 무엇을 답례로 드릴까 고민했던 기억은 나지만 결국 드리게 되었는지 기억이 희미하고, 설령 무엇을 드렸다한들 그분에게 받은 마음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선의(善意)’. 그분이 내게 베풀어 주신 마음은 단지 그것이었다. 받은 마음을 베풀어 준 당사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잘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한 곳에 나 역시 선의만 품고 꺼내야 할 것이다.

_ 떠난 분의 마음은 짐작할 수 없으나 앓던 지병으로 떠날 날이 가까워졌음을 알았고, 주변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마음에 품고 있던 소망도 눈으로 보고 가셨던 그분의 삶은 복된 삶이었을 것이다. 떠나는 마음이 부디 평안하셨길 바라본다.

_ 죽는 일에 관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남겨진 자의 입장에서, 죽음을 떠올렸을 때 가장 마음을 쓰라리게 휘감는 개념은 ‘상실’이다. 직계 가족의 죽음은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상상하고 싶지 않으나 언젠가 그 순간이 온다면 나의 방황의 이유는 아마 ‘상실’일 것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떠난 사람을 찾을 수 없고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그의 빈자리를 생각해 보면, 가늠되지 않는 상실의 무게에 아득해지곤 한다.

_ 남겨진 자가 아닌 아닌 행위자로써의 죽음에 관하여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살아온 날 중 가장 죽음과 가까웠던 시간은 군대에서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 나에게 ‘죽음’이라는 존재는 언젠가 마주할 막연한 것이 아닌 구체적인 실체를 가진 것이었다. ‘죽고 싶다’라고 직접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살고 싶지 않았다. 삶에 미련이 없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는 않겠지만 나의 의지로 지금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질병이나 사고 등 내 의지로 선택한 죽음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삶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시간이 있었다. 주변에서 누군가의 자살이 종종 사건사고로 다뤄졌고,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죽음까지 겪고 나자 마음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어느 날은 집안에 있던 끈들을 모두 가위로 잘라버렸던 일도 있었다. 아마 당시 마음으로 죽음의 기운이 연상되는 것들을 본능적으로 피해버렸으리다. 비슷한 사람은 서로 알아보는 걸까. 그 시절 나의 곁에는 죽음과 아픔과 상처의 그림자를 품은 이들도 자주 있었다. 한날은 같은 부대 동료와 식사를 하던 때였다. 대화가 깊어지던 어느 순간 그는 문득 팔을 걷어 내게 내밀었다. 그의 한쪽팔에 가득했던 빨갛고 선명했던 여러 개의 칼자국을 보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전입 왔던 그 역시 겪었을 무수한 시행착오들과 외로움과 스트레스가 아프도록 이해되었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했던 그때는 내 인생에서 그 시간들은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_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그 시간들은 내게서 지나갔다. 구체적인 과정 까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지나고 보니 시간은 약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관용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내게 정말로 그러했다. 그 뒤로 삶은 계속되며 무수한 기회들을 내게 주었고, 많은 좋은 인연들이 내 앞에 나타났고, 수많은 가슴 떨리는 일들이 내게 찾아와 나는 가끔 내 삶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에 안심했다. 그럴 때 가끔 먼저 떠난 이들이 떠오르는 날도 있었다. 모두 나와 같지 않기에 누군가의 선택을 존중하려 노력하지만, 죽음에 관한 일이라면 나는 단호하다. 내 앞에 이어지는 삶이 다행이라 느낄 때, 이른 죽음을 스스로 택한 이들로 마음이 따끔했다. 스스로의 삶에 조금만 더 기회를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조금만 더 살아보았으면, 절망으로 가득했던 시간보다 좋은 시간이 왔을 텐데 라는 더 이상 그들에게 닿을 수 없는 안타까움의 말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_ 그렇게 내 삶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살고 또 살고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에 관함이라면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삶은 이런 모습이라고 이런 것이라고 이것이 삶이라고 오늘 결론지어도 내일이면 내가 알던 것들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 삶의 새로운 모습들을 마주하기에 아직도 나는 나의 삶에 관해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살아 보아야 할 것 같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들을 낱낱이 생생하게 끝까지 다 살아보면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삶에 관해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의 모습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부디 마지막을 예감하고,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삶의 엉킨 일들을 정리하고 비로소 내 삶은 이런 것이었음을 알고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후회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의 몫이니 삶의 짧고도 유한함을 알아가는 나는 오늘도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자 마음먹는다.

_ 떠난 분의 죽음을 계기로 잠시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떠난 그분을 위해 마음 깊이 기도하며,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또 성실하게 살아내야겠다.

by. 수진 https://brunch.co.kr/@sulove/85
(이 글은 에세이스트 수진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