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마시지 않던 맥주를 한잔하던 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휴대폰 액정에 너의 이름이 떴습니다.
"언니, 엄마가 돌아가셨어."
한참 울음 끝에 너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떡하니, 너는 괜찮니'라고 만들어지다만 말들만 웅얼거렸습니다. 너는 눈물 속에서도 언제 발인을 할 것인지, 왜 늦게 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했고, 나는 내일 가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까마득한 밤이었죠.
너의 집은 시외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나보다도 긴 생을 보낸 터미널에 우두커니 앉아 버스를 기다렸죠. 내가 머무는 삶도 전과 후 사이에 잠시 거치는 정거장 같은 거였다면, 조금은 삶의 희망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너에게 먼저 간 어머니가 더 좋은 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확신에 차 위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옥상처럼 새파란 녹색의 바닥 위에 티비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마다의 생, 저마다 어떻게든 살아있었죠.
너에게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너에게 위로할 말들을 찾았습니다.
어디선가 힘내라는 위로가 제일 듣기 싫다던 말을 들은 적 이 있었습니다. 힘내가 아니라면, 맘껏 울어,라고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는 뻔한 말을 해야 할 까… 너의 마음에 적합한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네가 덜 슬플 수 있도록, 네가 조금 더 빨리 아물 수 있도록.
아무 말도 결정하지 못한 채 네가 사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던 곳이었죠. 어느 여름 방학, 너를 만나러 왔었습니다. 너는 나를 너의 스쿠터 뒤에 태우고는 마을을 구경시켜주었죠. 그때 보았던 큰 강과 헬멧 쓴 너의 뒤통수, 사이드미러로 보이던 너의 미소, 그런 것들만 조각조각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날 나는 너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습니다.
너의 집 냄새가 너무나도 따뜻해서, 네가 그렇게 다정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버스터미널을 나오자 큰 강이 보였습니다. 여전한 계절의 빛이 강물 위에 산란했죠. 풍경은 그대로인데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다시 보지 못할 풍경처럼 강 을 바라보았습니다. 장례식장 앞엔 너의 이름이 문패처럼 쓰여 있었고 문패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너의 슬픔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고, 어떤 말로 너의 맘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죠. 위로의 말이란 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식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눈두덩이가 꽃잎처럼 물든 네가 인사와 함께 미소 지었습니다. 나는 국화를 올려놓으며 네 어머니께 좋은 곳에 가시라고 너는 잘 버텨낼 것이라고 말했지만, 눈물 자국이 가시지 않은 너에게는 어떤 위안의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는 그런 나에게 웃으며 이야기를 건넸고, 나는 괜찮은 척하는 너의 노력을 믿어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위로의 말 대신 즐거웠던 우리의 추억들이 꺼내며 웃었고, 너도 간간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죠.
가끔 아직도 그 날의 장례식장이 생각납니다. 나는 너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어야 했을까요. 그때 몇 날이고 같이 밤을 새워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너를 웃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아니라, 네가 더 편히 울 수 있게 다독여줬어야 했던 게 아닐까… 웃는 너에게 장난처럼이라도 밥을 먹여야 했을까. 많은 경우의 수들이 떠돌아다닙니다.
벌써 몇 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 날의 부채감은 여전히 잔존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소중히 대하려면 소중히 대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위로의 말 대신 그 문장 하나만을 건졌습니다.
오랜만에 너를 만났습니다. 대학생이던 너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신입인데 야근이 잦다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네가 하는 고민들을 나는 아직도 나눠 가지지 못하지만, 남 욕할 줄 모르는 너를 위해 대신 화를 내는 것으로 네 마음을 위로했죠. 내가 터득한 위로가 네게 와닿았을까, 나는 너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어느새 우리가 시킨 음식들이 식탁 위를 채웠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 를 나누었죠. 배와 마음이 한참 부르고서야 우리는 젓가락을 놓았습니다. 너는 직장인이 된 기념으로 밥을 사겠다며 카운터로 걸어갔습니다.
너는 전처럼 아름답고 다정하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너를 위로하지 못했고, 아직도 소중히 대 하는 법을 알아가는 중이지만, 내가 여기에 있음이 너의 위로가 되길 바라며, 너에게만은 다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나 역시도 자라는 중입니다.
#위로의말 #진정한친구 #소중한대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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