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출생한 한국유리 최태섭 회장은 변호사가 되려고 공부하던 중, 일본 왕을 신성으로 받들어야한다는 헌법조문을 보고 변호사 되기를 포기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정미소 사업으로 시작하여 무역업으로 발전하였다. 그때 그가 취급 하던 제품 가격이 폭등하여 계약을 취소하면 쌀 천가마니나 되는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본래 계약대로 진행하여 중국인들에게 아주 큰 신임을 얻었다.
그 후 1945년에 해방이 되면서 기업주들을 악덕상인으로 간주하여 체포하여 죽이는 인민재판을 하였으나 같이 근무했던 노동자들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평소 노동자들을 가족같이 대한 결과다.
6.25가 터져 모두 피난 짐을 꾸리는 난리통에 최회장은 빌렸던 사업자금을 갚고자 은행을 찾았다. 은행 직원은 전쟁통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그는 되레 “난리통에 내가 죽어 돈을 못 갚을 수 있으니 모르니 어서 받으라”며 돈을 갚고 영수증을 챙겼다.
전쟁이 끝난 뒤 원양어업을 하기 위해서 부산은행에 갔다. 담보가 없었기 때문에 돈을 빌릴 수 없었다. 그때 난리통에 돈을 갚으러 온 최태섭회장을 알아본 직원의 도움으로 무이자로 2억원을 빌릴 수 있었다. 신뢰로 만들어 낸 대출이었다.
유리왕국을 건설한 고 최태섭명예회장의 ‘경영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청지기 경영론’은 너무나 유명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평생 외제차를 타지 않고, 골프장도 거의 가지 않은 청빈한 기업가다.
최명예회장은 평생 ‘유리’라는 외길을 걸었던 몇 안되는 외곬 경영인 중 한 사람으로 기업경영인은 욕심내서 이것저것 사업을 벌리면 안 된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그의 ‘청지기 경영론’은 1969년 일찍이 회사를 공개해 가족 소유 지분이 10%를 넘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노조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도 지켜 나갔다.
한국유리공업 노조는 1961년에 결성돼 그룹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나 노사간에 극단적인 마찰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최회장의 노조활동 불간섭이라는 원칙이 모범적인 노사화합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깨끗하게 부를 쌓는 기업인, 버는 만큼 베풀 줄 아는 기업인이었다. 많은 재산을 학교에 기부하여 활발한 교육사업도 펼쳤다. 국제기아대책기구 한국지부 이사장을 맡아 국내외 굶주리는 이들을 돕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진실된 경영인이었던 최태섭 명예회장은 1998년에 소천했지만 재계의 영원한 청지기로 후배 경영자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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