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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회의원 이석기'를 만든 책임

권영구 2013. 9. 2. 15:04

[사설] '국회의원 이석기'를 만든 책임

 

입력 : 2013.09.02 03:03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작년부터 국방부에 기밀 자료 20~30건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은 미군 기지 이전, 방위비 분담금, 전시작전통제권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료를 재촉했다. 이 의원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다. 소속 상임위와 직접 관련도 없는 군사적 기밀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북은 다 애국이고 남은 다 반역"이라며 "전쟁을 정치·군사적으로 준비하자"고 한 사람이다. 우리 군사 기밀을 빼내 북으로 넘기려 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석기와 같은 맹목적 북한 추종자가 국회의원이 돼 정부의 기밀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우리 기간 시설을 타격하려 했다는 혐의 내용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다. 이 의원은 1989년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하는 '반제청년동맹' 결성을 주도한 사람이다. 결국 2002년 민혁당 주요 간부로 활동하다 체포됐다. 당시 법원은 민혁당에 대해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 삼아 혁명을 달성하고자 하는 전위 정당으로서 국가 변란(變亂)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 단체"라고 판결했다. 그는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사람을 정부 출범 첫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어줬다. 노 정부는 다시 2년 뒤에 이석기를 특별복권시켜 선거에 나설 수 있게 했다. 사면·복권 때의 법무부 장관은 각각 강금실·천정배씨였고,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재인 의원이었다. 이 세 사람은 반국가 단체를 만든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변신해 국회를 대한민국 타격의 근거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이들 중 누구도 당시 이석기가 더 이상 대한민국 변란을 꾸밀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나중에 이석기가 국회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민주당과 이룬 선거 연대에 힘입은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투쟁은 1980년대 말 이후 뚜렷하게 변질됐다.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투쟁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하는 친북·종북 투쟁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우리 야권의 뿌리는 자유민주 회복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지만, 어느 때부터 여기에 주사파와 같은 종북 세력이 섞여 들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이 주사파에게도 '민주화 세력'이라는 가당치 않은 훈장을 달아줬고, 이런 풍조가 결국 이석기와 같은 사람조차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우리 야권이 주사파 종북 세력과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선거 때마다 연대 유혹에 빠진다면 제2, 제3의 이석기가 계속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