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한국은 왜 플랫폼 비즈니스의 리더가 되지 못했나?

권영구 2012. 1. 12. 09:32

한국은 왜 플랫폼 비즈니스의 리더가 되지 못했나?
상생과 개방에 대한 확고한 믿음 필요

# 1. 최근 몇 년 사이 유학을 다녀온 이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 싸이월드이다. 유학생들은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안부를 주고 받기 위해 싸이월드를 무척 유용하게 사용했다. 싸이월드는 당시로서는 독창적인 서비스 컨셉,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여러 기능들, 고성능 휴대폰 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한 사진공유 문화 확산 등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유저들이 사용하는 서비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미국 등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야심차게 서비스를 확대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 2. 전 세계 검색 및 온라인 광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터넷 공룡기업 구글. 플랫폼 비즈니스의 글로벌 리더로 손꼽히는 구글이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도 인터넷 검색 부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업체, 대다수 한국 사람들의 일상 생활 중 일부가 되어버린 네이버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바깥에서 네이버가 유의미한 검색엔진으로 자리잡은 국가가 있을까?

싸이월드와 네이버의 사례와 같이 한국에서도 ‘글로벌 표준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경쟁력 있는 서비스들이 만들어졌었고 또 이들이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어렵지 않게 독보적 시장지위를 구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성공적 플랫폼 서비스’로 성장하는 데 실패했던 것일까? 한국 기업들의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실패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향후 플랫폼 비즈니스를 열망하는 한국기업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핵심성공요인을 도출해 보자.

 

[핵심 성공요인 #1]  ‘산업 생태계(Eco-System)’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라
요즘 어딜 가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산업 생태계’ 혹은 ‘에코 시스템’이다.  특히,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정도의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 가고 있는 ‘애플’의 사례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생태계’이다. 생물학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이 단어가 왜 뜬금없이 가장 인기 있는 비즈니스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인가? 

‘에코 시스템’이야 말로 ‘플랫폼’의 특징 및 본질을 가장 명확히 표현하는 용어일 것이다. 그 본질은 바로 ‘공생(共生)’ 혹은 ‘상생(相生)’이다. 애플은 ‘아이튠스’라는 이름의 디지털 음악/비디오 콘텐츠 전문 마켓플레이스를 만들어 ‘플랫폼’이 가진 거대한 위력을 입증해 보였다.  나아가, 스마트폰 사업 진출 이후 ‘앱 스토어’라는 또 하나의 ‘플랫폼’을 이 세상에 선보이며 전 세계를 스마트폰 열풍으로 뒤덮는 데 성공했다. 주지하다시피, 이 모든 놀랄만한 성과는 애플 혼자 잘나서 이뤄낸 것이 아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백, 수천 개씩 품질 좋은 앱들이 업로드 되는 앱 스토어의 경쟁력은 바로, 전 세계에 퍼져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앱 개발사들로부터 나온다. 그들은 왜 앱을 만드는가? 물론 재미 삼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훌륭한 앱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앱 개발 전문조직들은 다르다. 전 세계 아이폰/아이패드 고객을 상대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우수인력을 뽑아 밤낮없이 우수 앱 개발에 매진하는 것이다.  앱 하나가 판매될 때마다 개발사가 70%, 애플이 30%의 수익을 나눠 갖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정책이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이와는 좀 다른 특성들이 발견된다.  일단 이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생태계’라는 개념 자체를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다수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머리 속엔 ‘생태계’라는 개념 자체가 들어 있지 않은 경우가 일반적이었다는 뜻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생태계’의 핵심은 ‘공생’이기에, ‘생태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대다수 한국 기업들에게 ‘공생’을 대체하는 개념은 ‘경쟁’이었다.  ‘공생’을 인정하지 않는 ‘경쟁’의 목표는 분명하다.  꺾고, 쓰러트리고, 넘어트리는 일이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영역에 진입, 우수한 성과를 창출하고 있는 중소기업들과 경쟁하는 ‘부끄러운 일’은 21세기 우리나라 온라인 업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보상수준을 제시하여 핵심인력 영입하기, 출혈적 저가경쟁을 감행하여 주머니가 깊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제풀에 나가 떨어지게 만들기, 인수해놓고 방치하여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리기, 터무니 없이 낮은 공급가격을 강요하여 중소개발사들이 영세적인 규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등등. 그 결과는 무엇일까? 십 수년 전부터 IT강국 코리아를 외쳐왔지만, 여전히 안방에서만 큰 소리치는 네이버 등 이미 대기업화 되어버린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 한국을 넘어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대로 된 업체가 하나라도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인접/유관 사업자들을 먹어 치우거나 혹은 고사시킴으로써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유일무이한 독점적 거대 사업자가 되면 일시적으로는 어떠한 경쟁적 위협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락함이 절대 오래갈 수 없음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다수의 공급사 및 고객들을 아우르는 플랫폼 하에서는 모든 참여자가 정해진 룰 안에서 co-opetition (협력적 경쟁 혹은 경쟁적 협력)을 하게 되며, 이러한 외부 참여자들이 가진 힘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기업은 전통적 기업이론으로 설명하기 힘든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경쟁자들과의 협력이라니, 괜히 경쟁자의 힘만 더 키워주는 게 아닐까’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럴수록 우리 기업들은 경쟁자들의 역량까지도 우리 것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경영체질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상생’을 가능케 하는 본질적 변화의 출발점이다.

 

[핵심 성공요인 #2]  인센티브, 인센티브, 인센티브!
기업 전략 수립 시 전략 수행 주체를 자사에 한정하지 않고 자사가 참여/주도하는 플랫폼 전체로 확장한다면 어떤 잇점이 있을까? 고려 가능한 전략적 옵션의 범위가 넓어짐은 당연한 현상이다.  플랫폼 관점으로 바라보면, 기업전략 수립 시 주요하게 고려되었던 전통적 요소들이 모두 다른 의미로 재조명된다. 개별 공급사 혹은 개별 고객 세그먼트와의 협상력 (bargaining power) 다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하면 플랫폼에 참여하는 각 개체들이 각자가 가진 ‘최고, 최선의 것’을 내어놓게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플랫폼은 플랫폼끼리 경쟁하기 마련이며 (예를 들면,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 vs. ‘애플 진영’이 경쟁하고, ‘페이스북 진영’과 ‘구글 (플러스) 진영’이 경쟁한다), 이 때 승부의 관건은 ‘과연 어느 플랫폼의 총합 경쟁력이 더 우수한가’이기 때문이다.

개별 참여자의 적극적 참여 의지를 극대화하는 수단이 바로 ‘인센티브’이다. 인센티브는 크게 ‘금전적 인센티브’와 ‘비 금전적 인센티브’로 구분될 수 있다. 과거 한국 기업의 사례를 보면, ‘비 금전적 인센티브’는 아예 개념 적용사례 자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금전적 인센티브’ 또한 ‘동기 부여수단’으로 작용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한국 기업들과는 대조적으로 애플이 앱 스토어에 적용하는 “70:30 정책”, 즉 앱 판매 시 개발사가 70%, 애플이 30%의 수익을 나눠 갖는 정책은 그 자체로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아, 그렇다면 애플이 70%, 개발사가 30%를 가져가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최초 앱 스토어에 등재할 때 개발비 명목으로 고정비용만 지급해주면 되지, 왜 애플 스토어 내에서 애플 고객에게 판매하는데 개발사와 수익공유(profit share)를 해야 하는가?”라며 애플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70:30 정책”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젊고 유능한 개발자들을 ‘스스로 애플의 일류 개발자처럼 움직이게’ 만들었다. 70%를 대기업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혹은 중소 개발사에게 대박을 안겨줄 수도 있는 수익배분정책을 굳이 왜 집행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한,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은 요원한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비금전적 보상’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에 참여한 우수업체들과 중장기적 비전/전략을 함께 고민하며 그들에게도 도전적인 목표를 부여하는 일이란 예전 한국적 정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사내에서조차 원활히 공유되지 않는 ‘1급 비밀’ 수준의 중장기 전략을 외부 업체와 공유한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플랫폼 개발 소스를 오픈하여 이를 원하는 모든 이들과 공유하는 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로 안된다고 버티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플랫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각 개체들의 진정한 참여(commitment)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내게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플랫폼을 선도하는 내가 먼저 진정성과 열정을 보일 때에만, 참여자들의 적극적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자사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무료 개방한 것은, 그들이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바라는 ‘인류애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는 애플의 스마트폰 운영체제(iOS)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구축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의도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애플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 운영체제로 성장하였다. 많은 돈을 들여 인수/개발한 안드로이드 체제를 아무 조건 없이 공짜로 내어놓는 결정, 과연 한국 업체라면 가능했을까? 적절하게 설계/운용되는 ‘인센티브’야 말로 전체 플랫폼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이자, 윈-윈 성공모델을 이끌어내는 핵심요소임을 주지해야 한다. 

 

[핵심 성공요인 #3]  끊임없이 개방하고, 끊임없이 확대하라
애플과 구글, 스마트폰에서 촉발된 둘의 경쟁은 이제 차세대TV로 불리는 스마트TV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스마트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미 세계 디지털TV 업계는 애플TV 진영과 구글TV 진영으로 양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애플 혹은 구글이 핸드폰 업계를 장악하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둘은 그저 컴퓨터 제조 혹은 검색엔진 개발에 뛰어난 업체들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 세계 휴대폰 시장 전체를 집어 삼키다시피 하고 있다. 나아가 TV 시장까지 넘보고 있고 이미 그들의 날선 공략이 시작된 것 같다.  양사의 운영체제가 탑재된 ‘스마트 냉장고’도 곧 선을 보일 거라는 얘기가 있다. 심지어 구글과 애플 모두 ‘스마트 자동차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 중이며, 조만간 그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과연 이들의 사업영역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명칭은 무엇이 될까? 휴대폰, 냉장고, 자동차를 아우르는 그들의 사업영역을 과연 한 단어로 집약하여 표현할 수 있을까? ‘디지털 플랫폼 업체’ 말고는 딱히 맘에 드는 표현을 찾기가 어렵다.  그만큼 이들의 잠재적 확장 가능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전방위적 확대는 어떤 의미에서 플랫폼 사업모델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플랫폼의 경쟁력은 해당 플랫폼에 참여하는 전 개체가 가진 경쟁력 혹은 창출해내는 가치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더욱 다양하고 강력한 가치를 창출하려면 다양한 개체를 플랫폼에 참여시키는 것이 정답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플랫폼 사업자는 끊임없이 개방하고, 끊임없이 확대해야 한다. 따라서 종래의 산업 간 구획에 대한 집착, 혹은 경쟁우위를 확보한 분야에서 안주하려는 유혹 등은 플랫폼 사업자라면 반드시 떨치고 극복해야 할 장벽이다.  그나마 성공적이라 평가 받는 한국의 어느 IT 업체도 구글 혹은 애플에 필적하는 (혹은 유사한) 영역 허물기를 시도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검색엔진은 검색엔진이고, SNS는 SNS이고, 온라인 쇼핑은 온라인 쇼핑이다’ 이런 마인드로는 기존에 구축해놓은 플랫폼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다양한 가치를 보유한 이종 사업자들을 어떻게 하면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유인하기 위한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내어놓는다”는 정신은 여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가장 귀한 것을 내어놓되, 그 대가로 미래의 핵심경쟁우위를 구축하는 마인드, 이것이 바로 ‘플랫폼적 마인드’이다.

이상에서 국내외 주요 사례들을 통해 발견한 시사점을 바탕으로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성공요인에 대해 살펴보았다.  ‘플랫폼’이라는 개념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관행,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단절적 사고’가 필요하다.  또한, 글로벌 플랫폼 전쟁 1라운드에서는 출발이 다소 늦었지만, 앞으로 지속될 2라운드, 3라운드에서는 결코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요구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한민국 경쟁력을 책임지고 있는 다수 기업들이 플랫폼 시대의 핵심성공요인을 숙지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실천에 옮겨주기를 기대한다.

 

Oliver Wyman

신우석은…
통신, 에너지, 하이테크 분야의 전문가이며,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학사) 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