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꼬꼬면은 우연에서 봉 잡은 케이스가 아니다?

권영구 2011. 12. 21. 10:00

꼬꼬면은 우연에서 봉 잡은 케이스가 아니다?
의도를 공유한 자율적 조직의 효과성

일전에 만난 마케팅 리서치 전문가 한 사람이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꼬꼬면의 성공을 꼽았다. 현재 월 판매량 1천만 개를 넘어서면서 꼬꼬면은 매출 4위였던 팔도라면을 단 번에 3위 권으로 끌어올렸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그가 꼬꼬면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놀라운 매출 때문이 아니었다. 이 라면이 만들어진 과정이 여느 상품개발과정과는 확연히 달랐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우연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꼬꼬면
TV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씨가 닭고기 국물로 맛을 낸 자신의 라면 비법을 소개했는데, 시청자들이 즉각적으로 SNS를 통해 이 요리법을 퍼나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곧이어 요리법대로 라면을 만들어 먹은 사람들이 맛에 대해 호평하는 글을 올리면서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이 점쳐졌다. 이러한 가능성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라면회사 직원이었다. 당초 ‘남자의 자격' 작가들은 라면요리대회에 유명한 요리 블로거를 섭외했다고 한다. 그래서 접촉한 라면 동호회의 운영자가 알고 보니 한국 야쿠르트의 팔도라면 사업부 직원이었던 것.

평소에도 라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동아리까지 만들어 운영하던 이 직원은 방송 직후 이경규씨를 찾아가 꼬꼬면을 상품화할 것을 제안했고, 이후 상품개발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3개월 만에 양산에 들어갔다. 방송 이후 제품에 스토리가 덧입혀지면서 기대감이 커진 상태에서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라면에 대한 신비감까지 조성되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던 팔도라면도 이제는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증산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한다.


엉겁결에 미국 시장을 장악한 혼다 스쿠터
이처럼 비즈니스는 예상하지 못했던 단서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1960년대 중반에 미국 모터사이클 시장의 63%까지 장악한 혼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59년 모터사이클로 미국에 진출한 혼다는 매출이 부진하자 사업 축소까지 검토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력제품이 죽을 쑤고 있는 동안 50cc 짜리 스쿠터의 판매가 늘어났다.

본격적인 광고도 하지 않은 제품이 인기를 끈 것은 혼다의 직원들이 간단한 용무를 보기 위해 스쿠터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소리가 요란한 모터사이클을 폭주족의 상징으로나 여겼던 미국인의 눈에 작은 스쿠터의 모습은 신기하고 귀엽기도 했으리라. 여러 곳에서 문의전화가 쇄도하자, 어떻게 해서라도 미국 시장을 개척하고 싶어했던 혼다의 미국지사 임직원들은 반전을 노리면서 스쿠터를 시장에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50cc짜리 오토바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혼다는 이를 발판으로 미국 시장에 입지를 키웠다.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하겠다.


의도를 공유한 조직은 작전에 실패해도 목표는 달성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전통적 ‘Plan-Do-See’의 업무 사이클은 항상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상세한 계획보다는 '명확한 의도, 느슨한 계획, 권한 위임'의 삼박자가 현대에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20세기 들어 가장 전쟁경험이 많은 미군은 정식으로 이러한 운용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상세한 작전계획보다는 '지휘관의 의도(Commander's Intent)'를 강조하며 부대원들에게 자율적 판단을 하라고 가르친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장은 비즈니스 현장보다 치열하고 돌발적 상황도 더 많다. 때문에 미군은 부대원들이 지휘관의 의도를 이해한 상태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가장 적합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부대원의 생존율과 작전 성공률을 높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율적 조직의 3요소 - 명확한 의도, 느슨한 계획, 권한 위임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현대인은 과잉 정보를 다루지 못해 자충수를 두는 상황에 종종 이른다. 민첩하고 즉흥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마저 모든 정보를 분석하려고 시도하면 결국 과잉대응에 자원을 낭비하는 실수로 이어진다. Plan-Do-See 업무 사이클의 틀은 유지하면서도 현장의 직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위임해야 조직이 민첩해질 수 있다. 하지만 리더들은 종종 직원들이 엉뚱한 판단을 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이를 실천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도 나름의 해법은 있다. 즉흥적 실행을 성공으로 이어가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성공은 우연히 찾아오기도 하지만, 우연한 성공이 자주 발생하는 조직은 의식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앞서 말한 명확한 의도, 느슨한 계획, 권한 위임은 우연한 성공이 빈번한 조직문화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이런 조직문화는 세 개의 다리를 가진 탁자를 닮아서 어느 다리 하나라도 짧으면 무너지고 만다. 창조적 조직문화로 널리 알려진 3M과 구글의 직원들이 느슨한 계획에 따라 근무시간의 15% 내지 20%를 개인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요리대회에 참관한 직원이 신상품을 발굴하고, 곁다리로 내놓은 스쿠터에서 사업 가능성을 본 혼다처럼 숨어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직원들이 늘어날 때 기업은 성장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은 늘 우연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년에도 많은 기업에서 제 2의, 제 3의 꼬꼬면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김용성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최고위 협상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전자 마케팅부, 미국상무성, 윌슨러닝을 거쳐 휴잇코리아에서 리더십 컨설팅 책임자를 두루 거친 HRD 전문가다. 국무총리실, 포스코, 샘표, 한국전력 등에서 다수의 강의를 진행한 바 있으며, 현재 IGM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경영지해> 등이 있다


* 위 칼럼은 한국경제 2011년 12월 16일자에 전문이 실렸습니다.